다시, 재료를 만든다는 것
《RE:Materials》, 아트 포 랩, 2024.7.13.- 2024.8.4.

송윤지(기획자)

예술가에게 재료란 작품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재료를 선택하며, 이때 종종 재료는 매체와 동의어로 쓰인다.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제작에 앞서 여러 재료를 탐구하거나, 작품활동과 재료연구를 병행한다. 기존의 재료들이 가진 특성을 파악하고, 서로 다른 재료를 뒤섞거나 본래의 용도가 아닌 곳에 사용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재료의 새로운 쓰임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새로운 재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여기, 그린레시피랩1)에서 모인 네 명의 예술가가 있다. 그들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각기 다른 기술로 다시 재료를 창조한다.

김한비(b.1996)는 태양열 패널과 모터를 사용해 공학적 숙주와 기생 식물을 재현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대체에너지 기술을 미술작품에 적용해왔는데, 이번에는 태양에너지를 재료로 삼는다. <새삼: 나를 산책시켜라!>(2024)는 동명의 기생 식물을 모티프 삼은 관객 참여 작품으로, 햇빛을 받아야만 작동한다. 관람자는 마치 화분처럼 생긴 <새삼>을 전시장 밖으로 들고 나가 '광합성'시키는 한시적 돌봄노동을 통해 보호자(또는 숙주)의 역할을 수행한다. <자발적 숙주>(2024)는 기생 식물인 '새삼'을 보호하듯 감싸면서도 빛을 많이 받기 위해 공격적으로 진출해 있는 형상으로, 보호체와 피보호체, 숙주와 기생체의 관계를 재고하게끔 한다.

김현희(b.1991)는 비닐을 콜라주해 새로운 직물을 만든다. <보>(2024)는 버려진 비닐봉지들을 수집해 해체-결합을 반복하며 조각보처럼 이어 붙인 현대판 '보자기'다. 직물화된 비닐 보자기는 마치 캔버스 천처럼 프레임에 고정되고, 매끈하게 마감된 정방형의 프레임들은 하나씩 증식해 커다란 평면추상이 된다. 이는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일수도, 또 다른 작품의 바탕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보자기의 본래 용도처럼, 김현희의 <보> 역시 무언가를 감싸는 재료로서 다시 사용될 수 있다.

정원(b.1994)은 바다의 해초인 우뭇가사리를 재료 삼아 해양쓰레기를 포함한 바이오페이퍼를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1년부터 지속해온 '섬의 조각' 작품들을 라는 제목으로 다시 선보인다. 천연재료로 만든 바이오페이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썩거나 곰팡이가 생기기도하고, 부서져 탈락되기도 한다. 정원은 이를 '작품의 생애주기'로 보고 그 변화를 그대로 공유하고자 한다. 또 다른 작품인 <지의류>(2024)는 나무나 오래된 건물 등에 생기는 지의류2)를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서 채집한 부산물로 재현한 것이다.

한이경(b.1997)은 버려진 플라스틱 용기를 거푸집으로 활용해 비누를 만든다. 일회용품의 대명사인 플라스틱 용기를 캐스팅하는 일은 얼핏 쉽게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가벼운 존재의 흔적을 기억하는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한이경은 플라스틱 용기를 비누로 치환해 그 쓰임의 시간을 지연 시키면서도 결국 사용 후 형체를 잃고 녹아 없어지도록 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쓸 때는 일회용품이지만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수백년이 걸리는 플라스틱과 극명히 대비된다.

대체에너지, 비닐, 해양쓰레기나 부산물, 플라스틱 용기 등 그들이 다루는 재료는 모두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그리고 그들은 재료의 본래 맥락을 강조하거나 전복시키거나 뒤틀어 각색하고, 작품 속에서 새로운 재료로서의 의미를 갖게 한다. 여기서 그들이 재료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따라 병들어가는 자연'에 관한 생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비닐, 쓰레기, 플라스틱들이 어떻게 다시 돌아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태양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모터는 자연에 기생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매일 전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 물부족, 토양의 사막화, 해수면 상승 등 환경의 위기를 경고하는 뉴스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기후 변화가 위험 수치를 향해 빠르게 치닫고 있는 작금의 세태는 인간이 오랜 시간 지구에 기생한 결과다. 이 전시는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다. 인간의 크고 작은 파괴행위가 현재의 환경을 만든 거라면, 또 다시 우리의 크고 작은 실천들이 미래의 환경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가에게 재료의 재창조가 지속가능한 작업을 위한 초석이라면, 《RE: Materials》은 곧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모두를 향한 메시지다.

1) 그린레시피랩은 예술가와 환경에 유해한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재료를 연구하는 여성 예술인 콜렉티브로, 2022년 결성된 이래로 3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모여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재료뿐만 아니라 작업환경, 전시환경 등 관심영역의 외연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2) 지의류는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로, 대기오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바이오모니터링의 지표로 여겨지곤 한다.